2025년 씨네꼼 문집에 투고한 영화 추천글을 옮긴다.


전혀 다른 영화 세 편을 추천하고 싶다.

빛을 향한 그리움 Nostalgia for the Light, 파트리시오 구즈만, 2010

때때로 시선은 영화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시선은 칠레의 땅으로부터 출발해 역사를 관통한다. 안데스 산맥의 서쪽, 칠레의 북쪽 지역에는 아타카타 사막이 있다. 이곳은 너무 건조해서 1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은 지역마저 있을 정도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구름을 피해 별을 바라보는 천문학자들, 썩지 않은 고대 인류의 시체를 조사하는 고고학자들, 그리고 피노체트 집권기에 총살당한 뒤 버려진 가족의 유해를 찾는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목적도, 찾는 바도 다르지만, 구즈만은 이들이 같이 공유하는 노스탤지어를 포착해낸다. 어쩌면 언제나 같은 속도로, 앞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에 무력하게 매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것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빛을 향한 그리움>은 모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러브레터 중 하나일테다.

마이애미 커넥션 Miami Connection, 김영군, 박우상, 1987

열 세 살의 나이에 태권도 검은띠를 딴 김영군은 1977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는 불현듯 태권도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이애미 커넥션>이 세상에 나왔다. 마이애미 어딘가에서 태권도 록밴드 “드래곤 사운드”로 활동하는 절친 네 명이 닌자 폭주족 갱단에 맞서 싸운다는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내용에는 피와 땀과 눈물과 한국인의 얼의 정수가 담겨있다. 마약이 가득 담긴 삼양라면 박스, 주연을 겸한 김영군의 조악한 콩글리시, 5분이 넘게 나오는 태권도 품새와 대련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있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폭력을 제거하는 것만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나는 이 영화의 순진무구함을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는 척 해줘 Pretend That You Love Me, 조엘 헤이버, 2020

유튜브는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요새 들어 유튜버들의 정식 감독 데뷔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기성 제작/배급 시스템을 거부한 채 유튜브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조엘 헤이버가 만든 <나를 사랑하는 척 해줘>는 아마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작품일 것이다. 컨셉은 이렇다. 헤이버는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여배우들을 본인 집으로 초청해서 오디션을 보고, 그 모습을 녹화한다. 곧 그와 여배우들의 관계는 거의 연인처럼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고, 공과 사, 현실과 연기의 구분이 흐릿해진다. 흥미롭지만 다소 낡은 이 영화의 형식이 유지되는 것은 오로지 조엘 헤이버의 과감한 솔직함 때문이다. 헤이버는 유튜브 영상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인터넷에 상주하는 젊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무력감과 우울감을 사실적으로 포착해낸다. 단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영화의 흐름이 탄생하는 지점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