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81편의 영화를 보았다.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영화만 잔뜩 본 것 같아 뿌듯하다. 인상깊게 보았던 영화 몇 편을 메모해 본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 김동주, 2010

2010년 언저리에 좋은 한국 독립 영화들이 많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수꾼>, <혜화, 동>, <경복> 등등…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작품이 바로 <빗자루, 금붕어 되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와 2010년 잠깐의 개봉을 제외하고는 영상자료원, OTT, 물리 매체 등 그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올해 서울에서 한 번 상영을 해 준다고 하여 몇몇 씨네꼼 부원들과 함께 관람했다.

영화는 오랜 기다림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신림 고시촌에 홀로 근근히 살아가는 50대 주인공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영화는 이것을 아주 엄격한 형식미로 담는다. 카메라는 눈높이 이상의 위치를 고집하면서, 살짝 기울어진 채로, 마치 깔보듯이 인물들을 찍어낸다.1 단순한 실험이나 스케치에서 그치지 않고, 중후반부에는 나름 담대한 서사적 도약을 거치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기회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꼭 한 번 더 보고 싶다. 김동주 감독의 두 번째 영화를 기다린다…

스탑 메이킹 센스, 조나단 드미, 1984

한동안은 이 영화(와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극장에서 총 세 번, 그 중 두 번은 댄스어롱으로 감상했다. 사실 세 번쨰 볼 때쯤에는 영화보다도 춤추는 사람들을 더 유심히 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도 않은 채로, 제목대로 이성과 상식을 내려놓고 뛰어노는 사람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 아주 오랫동안 잊기 힘든 극장 경험이 될 것 같다.

샤크네이도, 안소니 C. 페란테, 2013

<샤크네이도>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주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움직인다” (혹은 움직여야만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까지 잘 구현한 사례가 있을까? 익히 알려져 있듯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형편없다. 이를테면, 숏-리버스 숏에서 한 숏에서는 화창하지만 다른 숏에선 폭풍우가 몰아치는 식이다. 그렇지만 페란테는 이러한 불균질성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하다. 영화는 움직여야만 하고, 한 번 시작했으면 반드시 끝에 도달해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 두 숏은 붙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두 숏은 접합된다.

이러한 당위적 구성은 서사적으로도 반복된다.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 노라의 생존이다. 노라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헬리콥터를 향해 달려드는 상어에게 잡아먹혀 버린다. 그러나 잠시 뒤, (또다른 주인공인) 핀이 달려드는 상어를 전기톱으로 지져버릴 때, 놀랍게도 그 상어의 뱃속에서 노라는 기적적으로 구해진다. 나는 처음에 이 장면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서 핀의 아들과 노라가 연인이 될 때에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사실 <샤크네이도>에서는 주인공의 가족들을 제외한 등장 인물들은 전부 죽는다. 반대로 말하면 주인공의 가족들은 절대 죽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라 또한 죽을 수 없다. 노라는 주인공의 가족으로 포섭되어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만 하고, 상어에게 공중에서 잡아먹히더라도 핀에게로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샤크네이도>는, 마치 물 속에 있어야 할 상어가 하늘을 날아다니듯, 인과율을 완전히 역전시킨 논리에서 구축된 영화인 셈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장선우, 2013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유운성 평론가가 <에스퍼의 빛>을 변호하면서 말한 게임적 감각이라는 개념이었다. 정작 나는 <에스퍼의 빛>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유운성 평론가가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훨씬 성공적인 구현에 가까웠다. 초중반부의 맥락 없는 서사는 마치 <GTA> 등에서 보이는 오픈월드적 구성을, 중후반부의 하이스트 시퀀스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 같은 캠페인-퀘스트적 구성을 떠올리게 하며, 이는 자유의지를 되찾기 위한 왕도적 서사라는 영화 전반의 주제와 썩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물론 <매트릭스>를 대놓고 베낀 특정 장면 같이 객관적 결함은 있지만, 그리고 이 영화가 100억원을 쓸 정도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나무위키에 적혀 있는 것처럼 살벌한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꺼이 이 영화를 지지하고 싶다.

  1. 그렇지 않은 장면들도 있어 의아했는데, GV에 따르면 촬영감독과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